대만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식민경제를 어떻게 평가할까?

일본이 대만에서 펼친 경제 정책은 명백히 식민지 경제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실제로 일본이 대만의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재정 편성에 관한 주요 권한을 잡고 있어 대만인 자본은 억압적인 처지에 있었습니다.그러나 일본 시대의 대만 경제를 완전히 일본의 착취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그렇게 생각하면 식민지 건설이 대만 경제 발전에 미친 영향과 그 체제 아래 활동한 대만인의 적극성을 낮게 평가한 것입니다.객관적으로 보면 일본은 청나라 시대의 전근대적인 대만 경제 구조를 발전시키고 근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이는 단순히 표에 나온 부분적인 체제가 아닌 정밀 조사와 정확한 통계, 조직적인 행정 지원에서 내실 있는 것이었습니다.대만의 정세는 대만 총독의 고다마 겐타로와 민정 장관의 고토 신페이가 부임하면서 안정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고토오는 대만의 옛 풍습을 조사한 그에 따른 정책을 제시하는 “생물학적 원칙”의 기초를 쌓고 총독부는 이런 원칙 아래 대만의 옛 토지 제도와 법률 제도를 계승하는 것으로 안정된 통치를 유지시켰습니다.또 일본의 학자를 초래하고 대만의 사회 조사를 거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정책을 세웠습니다.2016년에 대만의 주요 역사학자가 집필한 대만 역사 기본서”도해 대만 역사”의 “대만 일치기(대만에서 일제 시대를 부르는 표현)”경제 서술의 도입부입니다.딱 봐도 일방적인 착취로 표현하는 것이 절대 다수 한국의 일제 시대 경제사 연구와는 정반대로 일본의 영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대만 총독이 부임함으로써 정세가 안정되고 있다고 기술한 것부터가 충격적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조선 총독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네요.이 책은 국립 정치 대학, 국립 대만 대학 등의 대만의 주요 명문대의 역사 교수들이 공저한 책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처럼 일부 학자의 소수설이 아니라 대만 역사학계의 주류가 일본의 경제 기여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청나라보다 확실히 행정 제도적으로 발전한 것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이 서문의 직후에 언급한 것이 일본의 대만 토지 조사이지만 한국이 조선 총독부의 토지 조사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과 달리”토지 소유 현황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안전한 토지 거래가 이뤄지도록 한 “과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혹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토지 조사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면 즉시 여론이 제기되죠?그러나 대만의 여론은 이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물론 이 책이 단지 친일은 아닙니다.일본이 대만 원주민을 착취하고 학살하기도 했고, 태평양 전쟁 시대의 총력전 체제에 시달리던 대만인의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그래도 이”대만 일치 시기”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보기엔 확실히 생경한 풍경이 있습니다.대일본제국의 원조식량기지 대만은 우리보다 15년 앞서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중일전쟁 이전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먹거리…blog.naver.com이처럼 대만이 일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예전에도 다루었습니다.원래 일본의 타이완 식민지 지배 정책 자체가 한국과는 상당히 달랐던 게 가장 큰 거요.조선 총독부는 꿈에도 몰랐다 문관 총독도 대만 총독부에는 잘 임명되고 또 상기 링크처럼 “경제 식민지”인 만큼 나름대로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이 대만에 먼저 정착하기도 했죠.또 대만의 역사는 절대 다수가 식민지 지배의 역사인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에 이어일본의 지배도 다만 지배자가 바뀐 정도의 또 다른 외세에 불과합니다.약 2천 여년 동안 독립 국가를 유지했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의 치욕을 받은 우리와는 또 다릅니다.더구나 지금의 “중화 민국”정부의 대만 통치도 2·28사건 등 아픈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들어 또 하나의 식민지 지배 정권과 보는 사람까지 있습니다.결과적으로 그들의 역사관은 단순한 친일, 반일을 넘어”일본이 이런 발전한 제도로 대만인은 이를 적절히 이용하고 발전의 계기를 만든 “정도로 묶을 수 있습니다.굳이 말하자면 일 날이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일제 말기의 총 동원 체제는 이”류이치”기회도 주지 말고 그저 착취만으로 일관했으니 당연히 좋은 볼 수 없습니다.이렇게 보면 대만 역사학계의 복잡한 일본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출처:곽 정위들 저 신·양 역,”도해 타이완사”글 항아리, 2021, p.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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